4) 문 두드리기
‘연기는 상상적 환경하에 진실되게 사는 것이다’라는 명제 하에서 본다면 위의 작업들은 진실되게 살기 위한 것에 해당한다. 이후 문 두드리기 부분은 상상적 환경을 위한 연습이 진행된다. 연습은 마주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문을 사이에 두고 안과 밖에 있는 사람이 상상의 환경(imaginary circumstances)을 가지고 서로 만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상상의 환경은 무대 배경 등의 외적인 환경이 아닌, 배우의 상상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배우의 내적 환경을 의미한다. 따라서 학생들은 극중에서 진실하게 존재하면서 자신의 상상력을 강화시키고 그것을 사용하는 능력을 훈련하게 된다.
샌포드 마이즈너는 이 훈련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 훈련의 처음 시작은 문 두드리기이다. 훈련은 문을 두드리면서 시작된다. 두 번째는 문을 여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그 문을 두드리는 것에 대한 해석이다. 세 번째는 그 문을 두드리는 것이 당신을 향해 있다는 의미이다. 당신이 문을 열자마자 당신에 의해 말이 시작된다” 이러한 상황은 흔히 일상에서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이므로 지금 학생 둘은 연기를 한다기 보다 실제 일어나는 관계로 인지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달라진 상황하에서도 반복훈련은 계속되며 이를 통해 학생들은 서로를 보고 인지하는 열린 상태로 있게 된다. 방안에 있는 사람과 방밖에 있는 사람의 활동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방에 있는 사람에게- 넌 방에서 뭘 하고 있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단순히 방에 있다. 파트너가 노크하기를 기다리고 있는가? 아니, 단순히 방안에 있다. 파트너나 그 밖의 누군가가 당신을 보기 위해 오고 있다는 것을 아는가? 아니, 그냥 단순히 방에 있다. 문에 노크할 때 파트너가 노크하고 있는가? 당신은 거기 누가 있는지 모른다. 당신이 아는 전부는 당신이 방안에 있고 노크소리가 들리면 그 소리에 답하는 것이다. 문을 열었을 때 문 앞에 있는 그 사람과의 관계는 무엇인가? 그 관계는 실제로 있는 그 무엇,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 문 앞에 있는 사람에게- 노크할 때 방에서 누가 대답하기를 기대하는가? 당신은 누군가가 집에 있는지 없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누군가 대답하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당신이 들어오는 것이 누구의 문인지 알고 있다는 것, 그것이 아는 것의 전부이다. 그러면 들어와서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떤 것을 하러 들어오지 않고 단순히 문으로 와서 노크를 하라.
사실 당신의 파트너가 문 밖에 있고 어느 순간에 그가 문을 두드릴 것이라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지 않은가? 방밖에 있는 사람에게도 방안에 실제로 사람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는 사실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당신은 이러한 가상의 환경을 믿어야만 하는가? 연기는 믿는 것인가? 아니다. 연기는 가상의 환경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그것이 진실인 것처럼 그렇게 사는 것이다. 당신은 아는 것과 동시에 알아서는 안된다. 당신이 알지 못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며 배우는 알아서는 안된다. 우리는 이제 이러한 ‘배우의 믿음’이라 불리는 것, 즉 가상의 환경을 완벽하게 받아들이는 능력을 강화시키고자 한다.
‘연기는 믿는 것이다(acting is believing)’ 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지만 알면서도 실천이 어려운 부분이다.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마이즈너는 문에 다가오는 상황에서부터 주어진 상황 연습을 시작한다. 그는 이러한 훈련을 ‘배우의 믿음’이라고 불리는 것, 즉 가상의 상황을 완벽하게 받아들이는 능력을 강화시키기 위한 것이라 설명한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상황을 던져주고 즉흥연습을 하는 것과 다르다. 상황즉흥 연습의 경우는 상황을 어떻게 끌어가야 하는지에 집중하면서 재치를 뽐내거나 임기응변의 기술에 대한 욕구를 불러일으키게 되어 막상 텍스트에 적용할 때 즉흥의 감각들을 이용하게 되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다. 주어진 상황을 배우가 가지고 있지만 앞으로 무엇이 일어날지 모르고 그 안에서 지킬 룰, 반복훈련과 액티비티(activity)와 같은 것을 열심히 수행할 때 자기도 모르게 즉흥 상황을 헤쳐나가게 되는, 모르는 것들에 맞닥들여 온전히 그 순간을 사는 상태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가상의 상황을 보다 면밀히 가져올 준비가 다 되었다. 가상의 상황을 단순히 믿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기 위해 어떤 방법들을 제안하는지 다음 장에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학생들은 극중에서 진실하게 존재하면서, 자신의 상상력을 강화시키고 그것을 사용하는 능력을 훈련하게 된다. 한진수 글 34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