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메소드 연기 3인방의 연기 접근의 차이
메소드 연기를 주창한 3인의 연기교사를 비교하는 이유는 그들이 어떤 결점을 가졌으며 서로의 결점을 어떻게 극복하고자 했는지를 알기 위해서 이다.
이들을 구분하는 언어들은 다음과 같다.
『20세기 연기훈련(The Twenties century actor training)』에서 크라즈너(Krasner)는 이렇게 셋의 방법론을 비교한다. 스트라스버그는 심리적인 부분을 강조했고 애들러는 사회적인 부분을 강조했으며 마이즈너는 행위의 요소를 강조했다고.
리 스트라스버그는 스타니슬라브스키의 초기 시스템을 바탕으로 ‘긴장과 이완’, ‘집중’, ‘정서적 기억’에 중점을 두고 훈련을 시켰으며, 스텔라 애들러는 ‘상상력’, ‘주어진 상황’, ‘신체적 행동’ 등 후기 스타니슬랍스키의 시스템을 중심으로 한 훈련방법을 만들어 냈고, 샌포드 마이즈너는 스타니슬라브스키가 배우와 배우 사이의 상호관계를 위해 설명한 ‘교감(communion)’을 중심으로 자신만의 훈련법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이 쓰는 용어와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이론들이 나오게 된 역사적 배경을 알아볼 필요가 있겠다.
1923년 여름 스타니슬라브스키의 시스템을 전수받은 모스크바 예술극단의 단원이었던 볼레슬라브스키(Richard Boleslavesky)와 마리아 오스펜스카야(Maria Ouspenskaya, 1881-1949)는 후에 마이즈너가 교사로 활동하게 되는 ‘네이버후드 플레이하우스(The Neighborhood Playhouse)’에서 연극 두편을 연습하고 올린 경험을 바탕으로 아메리칸 레보라토리 씨어터(American Laboratory Theater)를 열고 미국 최초로 공식적인 스타니슬라브스키 시스템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을 설립하였다. 이 교육기간은 2년제 과정으로 되어 있었는데 1년은 주어진 상황 안에서 ‘감정의 기억(memory of feeling)’을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는 기간이었고 2년째에는 희곡의 구조, 목적, 분위기, 비트 등을 통한 역할로의 접근에 대해 배우는 시기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다른 훈련들은 ‘감각훈련’과 ‘감정의 기억’을 위한 즉흥 훈련이 중심이었다.
그 당시 극단원으로 스트라스버그와 애들러가 있었으며 1928년에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그룹씨어터(The Group Theater)를 창단하고 훈련체계를 만들어가게 된다. 후에 마이즈너도 극단에 합류하면서 아메리칸 액팅 메소드 탄생의 시발점이 된다. 극단 설립초기에 연기훈련을 담당한 스트라스버그는 ‘이완’, ‘집중’, ‘정서적 기억’의 훈련을 핵심기술로 삼았다. 이를 바탕으로 한 공연들은 호평을 받았지만 참여한 배우들은 공연 중에 ‘내적 경험’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정서적 기억을 사용하면서 배역으로 존재하지 못하는 순간을 느끼고 위험을 인지하게 되었다. 대다수의 배우들은 스트라스버그의 훈련법에 절대적 지지를 보냈지만 애들러와, 카르노브스키, 마이즈너는 지나친 ‘정서적 기억’의 사용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다.
이러한 논쟁 속에 1934년 애들러와 스트라스버그, 해롤드 클러만(Harold Cluman)은 스타니슬라브스키 시스템을 확인하기 위해 러시아를 방문한다. 결국 애들러는 요양차 파리에 가 있는 스타니슬라브스키를 직접 만나기 위해 떠난다. 거기서 한달간 스타니슬라브스키에게 사사 받으면서 감정의 기억이 초기 단계에 집중했던 아이디어이며 그 후기 작업에서는 이를 대체할 방법들을 개발해나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후 미국으로 돌아와 스트라스버그와 결별하게 되고 기존의 훈련방식을 지양하고 ‘주어진 상황’ 속에서 인물의 정서를 어떻게 배우가 행동으로써 발견하고 구축할 수 있는가 하는 훈련법들을 정리해나가게 된다. 이후 1949년 <스텔라 애들러 연기 컨서버토리(Stella Adler Conservatory)를 설립하고 배우의 ‘상상력’을 확장하고 ‘주어진 상황’을 스스로 창조하며, ‘신체적 행동’을 구축하는 단계로 나아가는 연기훈련법을 개발하게 된다. 애들러에게 ‘신체적 행동법’을 들은 마이즈너 또한 그 후 자신만의 독창적인 방법론을 구축하게 된다.